달리기용 운동화가 탄생한 것은 언제일까?
속도, 활력, 야심의 상징 운동화
운동화라하면 사전전 의미는 "운동할 때 신는 신. 또는 평상시에 활동하기 편하게 신는 신" 입니다. 영어는 sneakers, running shoes 라고 부릅니다. 혹자는 운동화를 “지난 300년에 걸쳐 처음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신발”이라고 말하는데요. '새로움'은 운동화의 구조만큼이나 운동화가 상징하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운동화는 잠재적 구매라 불리는 소비 행동의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잠재적 구매는 집에 벽난로를 만들어 놓고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벽난로에 불을 지폈을때 가족들과 훈훈한 시간을 보내는 따뜻함을 떠올리는 그런 행동입니다. 마찬가지로 운동화에 대해서 실제로 액티브한 스포츠를 즐기지 않더라도 상상 속의 조깅, 농구 경기, 장거리 산책을 떠올리는 그 자체가 운동화를 신는 이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기 때문에 운동화에 대한 구매가 늘어난다고 볼 수 있겠지요.
최근에 스포츠 스타가 나오는 운동화 광고 중 연상되는게 있다면 잠깐 떠올려볼까요? 날렵한 운동화 디자인을 상상하는 것만 해도 속도감과 활력이 연상되지 않나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운동화는 운동할때 신는 신발이였다면, 지금은 패셔니스타의 잇 아이템이고, 직장인들이 출근할 때 정장에도 입고, 젊은 여성들이 다양한 패션에 운동화를 매치해서 신는 시대입니다.
현대의 걷기, 달리기 경주는 19세기에 비로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데요..아이러니하게 당시 마차와 철길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대중화에 한 몫을 한 것은 기차표가 노동자 층이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지면서 도보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 여흥을 위한 것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얼마 전 브라질 월드컵을 떠올리게 되면, 몸값이 천정부지인 선수들 못지 않게 주목을 받는 것이 축구화입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브랜드의 각축장이 월드컵인 것처럼 스포츠와 마케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요.
※ 관련 기사 : 아디다스 대 나이키 '스폰서 월드컵' 우승컵은
이런 스포츠마케팅이 등장한 것은 사실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닙니다.
운동화, 그 역사와 브랜드의 탄생
고대 그리스인들은 맨발로 달기기 경주를 했고, 당시에는 신발보다는 맨발에 적합한 트랙을 만들기 위해 값비싼 고운 모래를 경기장에 까는 등 아낌없는 비용을 투자했습니다. 이후 로마인들이 주관하는 올림픽에서는 맨발 대신 '크레피스'라는 일종의 샌들을 신고 달리기를 하게 됩니다.
19세기 후반에 가장 명성이 높았던 미국의 장거리 도보 선수 에드워드 페이슨 웨스턴(Edward Payson Weston)은 재봉틀 제조사 , 약제사, 사진사 그리고 의류 매장으로부터 상품을 홍보해주는 대가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지원 받았지만 여기에도 신발 제조회사는 없었습니다.
▲ Edward Payson Weston /출처 : http://eracewalk.walkingclubofgeorgia.com/ResoBookKingPeds4.htm
달리기용 신발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2년으로 영국 볼턴에서 아마추어 육상 선수 월리엄 포스터 William Foster 가 신은 달리기용 스파이크가 달린 '펌프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 신발로 인해 후에 리복이라는 운동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고 합니다)
▲ William Foster와 펌프스 /출처: http://sneakerreport.com/news/its-gotta-be-the-shoes-a-gallery-of-every-gold-medal-winning-track-spike-in-olympic-100m-history/
스니커즈의 시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운동화는 처음에 신발 업계에서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18세기 프랑스 과학자들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히비어 나무를 이용하여 신발과 주머니를 만드는 것을 연구해 산업적 활용법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고무로 만들어진 운동화의 효시는 19세기 중반 유럽 해변에서 유행한 비치 슬리퍼입니다. 유럽인과 미국인은 해변을 염전 외에는 딱히 쓸모없는 황폐한 공간이라고 여기고 살았는데요.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해변이 여름 놀이 공간으로 재발견되었습니다.
고무로 만든 여가용 신발은 1870년 대부터 인기가 많아지고, 보트, 테니스, 자전거 타기용으로 1873년 '스니커즈’가 등장했습니다. 20세기 초에 고무 밑창 신발이 유행한 것은 육상보다는 농구 덕분이었고, 이때 등장하는 회사 이름이 U.S 러버입니다. 이 회사에서는 스니커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케즈'라는 브랜드를 개발하게 됩니다.
▲ U.S 러버의 '케즈'/ 출처: http://www.vintageadbrowser.com/clothes-ads-1930s/3
케즈라는 이름은 장난스럽게 들리는데요.. 당시 이름을 날리던 '코닥'의 이름에서 영감의 얻어서 스니커 시장 공략하기 위해서 U.S 러버에서 만든 브랜드입니다.
1930년 대 운동화 발전에 중요한 시점으로 아디다스의 설립자 아돌프 다슬러가 등장합니다. 그는 1950년대에 축구의 새로운 경기 방식에 맞는 축구화를 만들어내는데요. 스니커는 1950년 베이비 붐 시대에 전성기 맞이하게 되지요.
제 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운동화 업계는 가죽 스포츠 신발 제조사와 고무 산업에 기반을 둔 스니커 회사로 양분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 가죽협회에서 1950년데 잡지 광고, 보도자료, 만화까지 (와우 웹툰이 떠오르네요?) 활용해 고무 밑창 스니커즈가 자라나는 아이들의 발에 미치는 악영향을 경고했습니다.
TV시대의 운동화 , 스니커를 현대의 러닝슈즈로 탈바꿈시킨 일등 공신은 조깅
1960년데 뉴질랜드에서 공공 체육 활동으로 시작된 조깅이 큰 유행으로 번지게 됩니다. 후에 나이키가 된 블루 리본 스포츠(지금의 나이키)의 창업자 빌 바우만 Bill bowerman은 1963년 오리건 주에서 조깅 클래스를 열기도 합니다.
▲ Nike의 창립자 Bill bowerman/출처:http://thehistoryoftheworlds.blogspot.com/2013/03/biography-of-bill-bowerman-founder-of.html
다음으로 등장한 운동화가 뉴 발란스의 '힐 웨지' heel wedge 입니다. 뉴발라스는 원래 보스턴에서 교정용 신발 전문회사로 출발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게 되지요. 1960년대 후반에 텔레비전 매체를 통해서 스포츠 스타들이 신는 신발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요.. 첫 스타트는 1954년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아돌프 다슬러의 아디다스 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디어 홍보사례는 아이러니하게도 신발을 벗어버린 육상 선수들의 사례입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올림픽 육상 200미터 종목에서 1등, 3등을 기록한 흑인 단거리 주자 토미 스미스 Tommie Smith와 존 칼로스 John Carlos가 주인공입니다. 이 선수들은 시상식에서 단상에 오르기 전에 신발을 벗고 고개를 숙인 해 검은 색 장갑을 낀 주먹을 높이 들어올렸습니다. 인종차별에 항의한 것으로 신발을 벗은 행위는 흑인들의 빈곤을 알리는 것이였습니다. 자연히 카메라 앵글이 이 둘의 맨발을 향했고, 그 때 클로즈업 된 것은 퓨마의 운동화였습니다.
▲ 토미스미스와 존 칼로스/출처:http://c308a.blogspot.kr/2009_02_01_archive.html
이미지 출처: http://speedendurance.com/2013/08/01/shin-splints-redux-a-ball-and-two-gloves/
최근 운동화를 만드는 회사들의 고민은 스니커즈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다는 점인데요.. 15세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모가 나이키나 다른 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을 보고, 브랜드 운동화 신는 것을 회피한다는 것입니다.
나이키 옥외광고 ^^
아디다스 옥외광고, 살아있는 식물로 만들어진 광고랍니다.
※ 참고
『사물의 역습 』. 에드워드 테너(Edward Tenner)
아디다스 대 나이키 '스폰서 월드컵' 우승컵은 (한겨레신문 201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