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귀재 오길비, "소비자는 당신의 아내이다"
광고계의 전설 오길비에 관한 책 "무조건 팔아라"에 나오는 말입니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책 제목부터 훅 들어옵니다. 제법 두께가 있지만 읽고나서 시간이 아깝지 않은 책입니다.
가장 유명한 광고인이자 현대 광고의 아버지 오길비는 영국의 명문가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같은 광고길을 걸어갔던 형에 비해 어린 시절 큰 두각을 나타나지 못했던 오길비는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했으나 결국 중도에 그만두고,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습니다.
광고의 세계에 입문하기 전에 파란만장한 그의 이력은 매우 흥미 진진합니다. 대학 중퇴 후 프랑스 파리 일류 호텔에 요리사로 들어가 깐깐한 세프의 인정을 받아냈고 , 영국에 돌아와서는 그 경험을 살려 조리기구 방문 판매원으로 승승장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훗날 그의 광고의 큰 줄기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소비자가 반응하는 광고가 어떤 것인지 몸소 체득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38년 오길비는 이십대 후반에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려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여론조사 갤럽의 조사원, 영국 정보부 첩보원, 아미시 마을의 농부로 사는 등 참 다사다난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1940년대 후반에 미국 메디슨가에 입성해서 휴잇오길비벤스앤드매더 주식회사를 창립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에는 족보가 확실한 대형광고회사가 즐비했고, 데이비드 오길비가 속한 회사는 적은 자금, 검증되지 않은 사장에 원칙은 많았지만 실제 광고경험을 전무한 리서치 디렉터 밖에 없었습니다. 보장된 성공은 없었지만 포부가 남달랐던 오길비는 빅아디이어로 가지고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던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애드버타이징 에이지>는 20세기 100대 광고를 뽑았으며, 이중 오길비앤드매더의 작품 세 편이 올랐는데요. 맥스웰하우스의 "마지막 한 방울 까지 맛있어요",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카드의 "절 아세요?", 해서웨이 셔츠 회사의 "해서웨이 셔츠를 입은 사나이" 입니다.
※ 이미지 출처 : http://bit.ly/1xKRQee/ 해서웨이 셔츠회사 앨러튼 제트 사장의 의뢰로 만들어진 광고이다. 당시 해서웨이 사장은 광고비가 적다는 것과 광고를 만들어주면 이후에 광고회사를 바꾸지 않고, 광고 카피를 한 마디도 바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오길비는 이일을 맡아 8년 간이나 작업을 했다. 당시 해서웨이는 연간 6만 2천 달러의 광고비를 지출했는데. 매출은 500만 달러에서 1300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 세기의 광고는 모방 작품도 많이 나왔고 오길비 자신이 모은 것만 해도 100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손 꼽을 수 있는 오길비의 작품으로 도브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세계적 브랜드의 기반을 닦은 성공사례입니다. 첫 도브의 광고 "4분의 1 클렌징 크림이 피부를 더 젋게 지켜줍니다" 의 설득력은 다른 생활용품에까가지 영향을 미쳤고 도브는 그 덕분에 세계 일류 생활용품의 브랜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멍청이가 아니라. 당신의 아내이다.
그녀를 속이지 말고 그녀의 지적 능력을 무시하지 마라.
오길비는 미국 광고의 질을 높이고 멋을 더해주었으며 광고의 전문화에 이바지한 인물이며, 브랜드의 개념을 창안한 사람은 아니였으나 브랜드 이미지, 기업 문화를 알리는 전도사였습니다.
이 책에서 크리에이티브의 귀재 오길비의 면모 외에도 '리더'로서 영향력을 살필 수 있습니다. 맨손으로 광고대행사를 차리고 어떻게 대규모의 국제적인 대행사로 설립하게 되었는지 살아있는 경험담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을 만들고 그 가치를 규정하는데 생을 바치고 , 전문 광고인으로 인재를 길러내는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훌륭한 병원은 두 가지 일을 한다. 환자들을 보살 피고, 젊은 의사들을 가르친다.
오길비앤드매더는 두 가지 일을 한다. 광고주들을 보살피고 젊은 광고인들을 가르친다.
오길비앤드매더는 광고계의 대학병원이다
영국인이자 스코트랜드인 오길비는 매우 사교적이고 매력적인 남자였습니다. 남의 주목을 끄는 잘 생긴 외모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강 멜빵으로 자신을 이미지하는데도 능수능란했는데요. 그는 튀는 복장으로도 꽤 유명해서 공식석상에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인 킬트를 입고 나타나기도 해서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습니다.
광고주 관리에도 수완을 발휘한 오길비는 광고주 헬레나 루빈스타인의 광고를 16년 동안 맡았으며,(광고주 헬레나가 차에서 내릴때 오길비가 재킷을 벗어 흙탕물 도로에 까는 퍼포먼스를 펼치기까지 했다.) 광고 커미션을 받는 관행을 깨고 의사나 변호사 처럼 수수료를 지급 받도록 이끌어낸 장본인입니다.
오길비는 이 책의 제목처럼 광고는 광고주의 매출 증대에 이바지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 목표라는 것을 누누히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광고주의 심리에서 가장 중요한 셀링 포인트는 매출인데요. 현업에 종사하다 보면 이런 기본을 간과할 때가 의외로 많고 이런 광고주를 속물로 취급할 때도 더러 있게 됩니다.
오길비가 광고계의 전설인 것은 빅 아이디어를 강조하고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귀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길비는 과학적 광고의 원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보다 여론조사를 신뢰하고 다이렉트 메일과 이성적 호소력을 신봉했습니다. 후에 리처시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오길비는 광고주의 광고를 방영하고 다음날 소비자에게 전화를 걸어 광고에 조사하는 Day-after recall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빅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만들지 않은 광고는 이류다.
광고의 방향이 결정되고 나면 분명하게 실천에 옮겨라.
타협하지 말라. 강해져라. 에둘러 말하지 말라. 철저하게 끝까지 밀어붙여라
1950년대 오길비의 대행사는 황금기를 맞게 되고 1960년대에도 유명세를 더해가게 됩니다. 영국 정부를 수출를 장려하는 광고로 영국 영화으로부터 대영제국 커맨터 훈장을 받는 영예도 안았습니다.
타고난 일벌레로 가장 늦게 사무실에 남아서 일을 즐겨하고, 집에 까지 일을 싸가지고 갈 정도로 광고일을 좋아했던 오길비는 덕분에 두 번의 결혼을 하고 말년에는 프랑스 뚜푸성에서 그의 두번째 부인과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오길비는 인쇄세대의 총아로 텔레비전과 음악의 호소력을 인식하는데 더 오래 걸렸고, 1960년대와 1970년대 크리에이티브 혁명 전선에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고 오히려 엔터테인먼트를 중시하는 더 시각적이고 감성적이고 웃기는 광고의 홍수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광고를 직업을 바라 보게 만든 사람이고, 그의 유산은 인쇄 광고나 텔레비전 광고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이 책은 광고나 홍보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광고계 대 선배의 영웅적인 성공담을 읽으면서 벅차오르는 감동을 나도 모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오길비처럼 에이전시를 운영하거나 일반 기업을 CEO에게는 사업 운영에 있어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데요. 그의 사업적인 면모에서 특히 인적인 네트워크를 쌓는 그의 재능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오길비의 크리에이티브 철학은 독자마다 다르게 다가 올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말년에 대부분 현대 광고들이 메시지를 독창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칭찬했지만 대부분 제멋대로 모호하고, 광고주의 돈을 낭비하고 , 광고의 목적을 잊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오래 남는 아이디어, 브랜드 이미지, 소비자에 대한 존중, 세계적인 브랜드.. 이 키워드들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무조건팔아라 - 광고로 세상을 바꾼 천재』 케네스 로먼,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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