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누군가에게 아이디어를 빌려오기 '바로잉'
얼마 전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이슈가 온 국민이 떠들썩 했습니다. 문학에 있어서 표절 행위와 아이디어 모방은 다른 차원의 이슈일 수 있겠지만, 모방이 창의성 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책이 '바로잉'입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필연적으로 다른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결코 무 에서 유를 창조 할 수 없다 . 무언가 있어야만 그것을 재료로 삼아 다른 어떠한 것을 만들수 있다"는 것은 뇌 물리학의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란, 그 이전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이 책을 전체를 흐르는 저자의 메세지입니다. 성경의 잠언에도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책의 부제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원 저작자를 따라 올라가면 , 누구의 아이디어에 그 누구의 아이디어가 보태지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잉' 이라는 직관적인 책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창의적인 사고를 이끌어낼 수 있는 해법으로 '모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차가 자동차로 진화했고, 워크맨에서 아이팟이 탄생했으며, 구글의 검색엔진도 그 이전의 야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듯이 아이디어란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하는 개념이라고 저자 머레이는 강조합니다. 탁월한 아이디어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천재들의 유형을 분석하고 역사적으로 대단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사례도 매우 흥미 진진합니다
1단계 정의하라. :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라.
2단계 빌려라 : 아이디어를 가까운데에서 또는 아주 먼 곳에서 빌려라.
3단계 결합하라 : 빌린 아이디어를 서로 연결하고 결합하라.
4단계 숙성시켜라 : 결합한 내용이 해결책이 되어 나타날 때 까지 숙성시켜라.
5단계 판단하라 : 마련한 해결책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라
6단계 끌어올려라 :강점은 더욱 강화하고 약점은 제거하라.
창의성의 비밀은 그 원천을 숨기는 방법을 아는 데 있다
1단계 '문제 정의'는 가장 핵심적이고, 매우 중요합니다. 해결책이 잘못되는 것은 문제 정의가 잘못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문제에 대한 정의는 모든 아이디어가 구축되는 기초입니다. 문제를 거시적으로 미시적인 관점으로 정의해야하고 엉뚱하게 정의하지 않기 위해서 입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놓치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검색 문제는 없을까'
창의성의 비밀인 '아이디어 빌리기' 행위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있어 왔습니다. 아이디어 모방이 '표절'로 단순 매도된 것은 현대에 들어섰다는 논리로 흥미로운데요. 세익스피어 시대에는 현대와 같은 창의성이 현대의 '독창성'이라는 개념보다는 창조적인 모방의 개념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기가 끝나갈 무렵에 화가들이 독립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독창성’이라는 개념의 가치가 커졌는데, 화가들이 자기 것을 모방하거나 표절하는 행위로부터 자기 자신과 작품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중반에 마케팅이 대두하면서 아이디어 빌리기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더하게 되었는데요. P&G같은 회사들은 초기의 상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들의 제품을 복제하는 행위는 용인할 수 없는 불법행위가 되었습니다. 독창성 개념이 자리를 잡고 난 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인 판권, 상표권 특허권 같은 지적재산권이 뒤따르게 되었는데요. 이런 개념들이 창의적인 과정에서 오해의 안개가 되고 말았고, 오늘날 이 오해는 창의의 역설을 낳았습니다.
경쟁자에게 아이디어를 모방하면 '도둑질'이며,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빌리면 독특하고 창의적인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멀리 나아갈 수록 아이디어는 더욱 창의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독창성과 표절은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일반인과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뉴턴과 헤밍웨이, 피카소와 차이점은 '어떤 것을 베끼는 행위에 있는 게 아니라 베끼는 재료의 원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단계 결합하기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조합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결합하려면 우뇌적 좌뇌적 사고가 둘다 필요한데요.. 오른쪽 눈은 좌뇌와 연결되어 있고, 왼쪽 눈은 우뇌와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흔히들 창의적인 사고를 이야기하면 우뇌적인 발상을 이야기하는데요. 이 책에서는 창의적 생각을 하려면 좌뇌적 사고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구축한다는 것은 빌려온 갖가지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해결책의 구조물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기 떄문입니다. '우뇌'는 사물을 뭉뚱그려 파악하고 '좌뇌'는 사물을 쪼개서 각각 요소를 분석적으로 파악합니다. 시계를 분해하는 일 보다 분해된 것을 다시 조립하는 일이 훨씬 어려운데요. 하나로 모으는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뇌적 사고이고, 개별적인 요소로 분해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방식은 좌뇌적 사고라고 합니다. 좌뇌적 사고없이 우뇌적 사고만 밀고 나가면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며, 거꾸로 좌뇌적 사고만 강조한다면 영혼없는 재미없는 상품이 나오게 됩니다.
아이디어를 숙성시키는 4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쉼' 입니다. 저자가 추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자기'입니다. 그렇다면 깨어있을 동안에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숙성시키면 좋을까요? 산책을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거나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뉴턴은 중력에 대해서 학생시절에 이미 그 개념을 상상했다고 합니다. 그 후 광학과 천문학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10년 동안 중력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 시간들이 오히려 나중에 개념을 다시 끄집어 내었을때 통찰력이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랜 정지의 힘이 매우 강력하네요.
판단은 아이디어를 진화시키는 또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5단계의 '판단하기'는 단순히 약점과 강점을 판단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마지막 6단계에서 약점을 제거하는 것은 무언가를 빼는 작업입니다. 더하는 것이 아이디어를 복잡하게 한다면, 빼는 것은 아이디어를 단순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를 이해하기 쉽고 매끈하게 다듬어서 실용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빼기는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서 더욱 중요하며, 사업에서 단순성은 결정적인 요소입니다.마케팅 전문가 알리스에 따르면 평균적인 소비자는 텔레비전 광고, 라디오 광고, 인쇄물 광고, 인터넷 배너광고, 간판, 세일즈 맨 그리고 심지어 화장실 소변기 위에 붙어 있는 안내문구 형태를 통해 매일 홍수처럼 넘처나는 광고 메세지를 접한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기업이 의도한 메세지가 얼마나 잘 전달될 수 있을까요? 메세지 전달에 성공하려면 단순하고 집중적인 단일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아무 쓸모없는 어떤 것을 뺄 수 있을까창의적인 모든 과정에서 구조를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데요. 재료를 재결합할 때 5가지 사고( thinking )도구로 더하기 , 빼기, 곱하기, 나누기 그리고 재배열입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재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요소들을 더하고, 낡고 맞지 않는 요소들은 빼고, 여러가지 요소를 곱해서 늘리고, 하나의 아이디어를 다양한 요소가 모인 여러개 집합체로 나누고 기존요소들을 새로운 체계로 배열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나누는 것이 기업계에서 새로운 제품의 카테고리가 탄생하는 과정이 비슷합니다. 기업가는 기존 제품에 포함된 독특한 사용처, 즉 해결된 어떤 독특한 문제를 따로 떼어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나누기를 잘하려면 '나에게는 따로 분리해서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는가'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저자는 빼고 더하고 나누고 곱하는 단계에서 아이디어의 재구축 도구로 '재배열' 개념을 소개하고 있는데요. 재배열은 모니터 화면의 여러 요소를 효율적으로 다시 배열하는 웹디자이너의 업무와 비슷합니다. 필자가 최근에 진행 중인 클라이언트의 홈페이지 프로젝트가 떠오릅니다. 메트로 스타일로 메인 페이지를 여러 개의 구역으로 분할해서 여러 칼라와 다양한 요소를 배합합니다. 다양한 크기의 박스가 어떻게 배열되고 각 박스에 텍스트를 입히거나 이미지를 연출할때. 영어, 한글, 사진, 벡터 이미지의 결합 방법에 따라 또 하나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재배열의 과정이야 말로 흥미로운 창조의 과정이며 무수한 조합이 숨어있습니다.
복사와 모방은 창조의 원천입니다.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 문화 콘텐츠를 기획할 때 떠오르는 영감과 비주얼은 100% 순전하게 독창적일 수는 없으며,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의견 또한 미디어나 특정인의 견해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농경시대 (Agricultural Age) - 산업시대 (Industrial Age) - 정보시대 (Information Age)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21세기 정보는 상품이며 힘입니다. 핑크는 정보시대 다음은 ‘개념시대’ Conceptual Age 가 다가오며, 정보시대의 주인공은 지식 노동자이라면, 개념시대 주인공은 ‘창의적인 ‘ 노동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노동의 특성은 기존의 정보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정보를 창조하는 차원으로 변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데요. 이미 컨셉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는 '창의성'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창조적인 모방이 아닐까요?
끝으로 이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는 저자의 약력이 버라이티하기 때문입니다. 저자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DAVID KORD MURRAY)는 창의성 분야의 저명인사이자 기업의 혁신 책임자인데요. 버몬트 대학교에서 구조공학 학사학위를 받았고,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맥도넬 더글러스 항공우주 컴퍼니 에 우주선 기술자로 처음 회사에 취직해 우주선, MX 미사일, 국제우주정거장ISS 등의 프로젝트에 참가한 경력과 국방부, 미국항공우주국NASA, 의회 그리고 백악관 연락관으로 등으로 일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금융서비스 분야에 들어가 여러 개의 회사를 창립한 기업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잡지사, 캐필터회사, 마케팅 컨설팅 회사를 세웠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전도사입니다. 월트디즈니, 스티브잡스, 뉴턴, 다윈, 래리페이지, 오프라윈프리, 에디슨, 빌게이츠, 아인슈타인, 조지루카스 등 세기의 인물의 창조성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Borrowing 바로잉 』,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부제: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