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전화가 갑자기 걸려오면 무슨 일이지? 깜짝 놀랍니다. 지인들과 안부를 물을 때 전화 통화보다는 카톡 대화나 SNS로 소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인데요. 업무적으로도 급한 경우가 아니면 음성 통화를 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SNS, 이메일 문자를 통한 비대면커뮤니케이션이 빈번해지는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언어적인 부분 외에 비언어적 표현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인류학자 버드휘 스텔(Birdwhistell, 1995)에 의하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65% 이상이 비언어적 요소로 전달되며, 35%만이 언어적 요소에 의해 전달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언어적 표현은 말 외에도 얼굴 표정, 손과 발의 제스처 등 다양한 신체의 신호입니다. 눈썹을 치켜 올리거나 입꼬리의 미묘한 변화, 그리고 눈빛, 그리고 목소리 음성을 높낮이 말하는 속도 등을 통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는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표정을 잘못 해석하거나 간과해서 불행한 일이 전개되기도 합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언어의 섬세한 신호를 해석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는데 남보다 한걸음 앞서갈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신체 언어가 어떤 순간에 유용하게 쓰이는지 유명한 정치인들의 TV토론과 기자회견 등 공식석상에서 나타난 사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TV토론에서 표정을 무기로 내세워 트럼프를 공격한 해리스
지난 9월 10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미국 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해리스 부통령 후보의 첫 TV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ABC뉴스에서 90분간 주최한 토론에서 각 후보는 질문에 2분씩 답변할 수 있었는데요. 자신의 발언순서가 아니면 마이크가 꺼졌습니다. 상대의 발언 도중 끼어들 수도 없기 때문에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트 전 대통령의 발언에 맞대응할 수 없게 되자 표정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해리스는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답변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리고 턱을 숙이며 '그의 답변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의미 전달을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이 대만에서 칩을 샀다"고 말했을 때는 해리스 부통령은 '말도 안된다'고 입을 벌리고 고래를 저었고, 트럼트가 해리스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표현했을떄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오버액션을 전달했습니다. 이어 해리스 아버지까지 마르크스주의라자고 부르자 해리스는 턱에 손을 대고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토론 전반적으로 해리스는 침착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고,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토론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고성을 지르고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콘은 "해리스는 계속해서 트럼프를 짜증나게 했다"며 "해리스가 미끼를 던지면 트럼프는 계속해서 물었다 " 라고 평가했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6월 바이든 대통령과의 토론 대결을 연상시키듯 처음에는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로 시작했지만, 해리스가 그를 몰아붙이자 점점 더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민이나 경제 등 자신에게 유리한 분야로 토론 주제가 바뀌었음에도 이를 적극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인지 오류의 사고 함정, 美사상 첫 대선 TV토론…‘정치신인’ 케네디 vs ‘부통령’닉슨
TV토론이 대통령 선거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0년 미국에서였습니다. 1960년 9월 26일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 후보 토론이 TV브라운관을 통해 중계되었습니다. 현직 부통령으로 높은 인지도에 경험과 노련함을 앞세운 '닉슨'과 상원의원이였던 43세의 신인 '케네디'의 TV토론 결과는 뻔해 보였는데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 달랐습니다. TV토론이 끝난 후 집계된 예상 최종 득표율은 케네디의 승리를 확신했으자 라디오로 토론을 접한 사람들은 반대로 닉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1960년 11월 8일 존 F케네디는 매우 아슬아슬한 격차로 승리하면서 미국 제 3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없었다면 케네디는 아마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시 첫 TV토론회는 미국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인 7000만 명이 시청했습니다. 화면에 비친 두 후보의 이미지는 뚜렷이 대비되었습니다. 케네디는 젊고 건강하고 매력이 넘쳤고, 구릿빛 피부에 여유있는 밝은 모습이었던 반면 닉슨은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창백하고 초췌한 모습에 식은 땀을 흘리며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습니다. 또한 흑백 TV지만 짙은 색 정장을 입은 케네디 모습은 세련되게 부각되고 닉슨의 회색 양복은 스튜디오 배경색에 묻혀 버렸습니다.
토론의 진행에서도 닉슨은 논리적으로 토론을 이어갔지만 시종일관 케네디를 보면서 발언을 해서 시청자들에게 그의 옆 얼굴이 비춰졌습니다. 반면에 케네디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미국은 훌륭한 나라지만 더 훌륭해질 수 있다. 미국은 강한 나라지만 더 강해질 수 있다고 "고 말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TV토론의 시각적인 효과는 그 여파가 대단해서 한동안 대통령 후보들이 TV토론을 거부했고 다음 토론은 1976년이 되어서야 재개되었다고 합니다 . 그야말로 TV토론회는 미디어 정치 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1960년 <존 F케네디 VS 닉슨 토론>과 1976년에 재개된 대통령 선거 <지미카터 VS 제럴드 포드 토론>을 지켜본 심리학자 랄프 엑스라인은 후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신호를 자주 보일 수록 시청자는 해당 후보가 대통령이 될 자질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엑스라인은 특히 다음과 같은 스트레스 신호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했습니다. 말 실수를 하거나 입술을 핥고, 계속해서 이리저리 시선을 바꾸고, 눈을 빠르게 깜빡이고, 몸을 흔드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언어적 신호가 대통령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실 후보가 내세우는 정책 공약이나 메세지 텍스트 내용 보다 TV토론에서는 이런 신체언어가 주는 메세지가 더욱 강력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될 만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생각과 메세지를 말로 얼마나 잘 전달하는가 보다 비언어적으로 생각과 메세지를 어떻게 전하는지가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독일 메르켈 전 총리의 신체언어, 마름모의 의미
독일의 정치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메르겔 총리일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 사람입니다. '메르켈의 마름모'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고 고유한 손동작입니다. 메르켈의 손동작은 특유의 신호일까, 아니면 단순한 기준선일까요?
이에 대한 답은 1991년에 진행된 인터뷰 영상 중 하나를 살펴보면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991년은 그녀가 대중매체 앞에 서본 경험이 적은 상황으로 메르켈은 손에 사무용 클립을 쥐고는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며 구부리곤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물을 만지는 제스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전형적인 신호입니다. 총리가 된 이후로도 메르켈은 말할 때 항상 눈이 아래를 향하고, 시선을 자꾸만 이리저리 바꾸고, 어깨는 약간 위로 들려 있었습니다. 이 또한 매우 긴장한 상태를 나타내는 신체언어입니다.
한동안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 그녀의 손동작에 대해서 내면의 평온함을 뜻한다든지 프리메이슨 단원의 상징이라는 해석까지 있었습니다. 심지어 메르켈의 손동작을 '권력의 마름모'라고 부르는 사람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한 인터뷰에서 메르켈은 자신의 손동작에 담긴 비밀을 밝혔습니다.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항상 했는데, 거기서 이런 동작이 나온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마름모 동작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통제하고 스스로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으로, 자신을 어루만지는 전형적인 제스처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손동작은 대칭을 이루는 균형 잡힌 자세를 통해 밖으로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보이기 때문에 클립따위를 만지작거리는 것보다 더 좋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르켈의 마름모는 처음에는 스트레스 신호였지만, 반복되면서 메르켈의 비언어적 기준선으로 발전했습니다.
마름모 동작이 자칫 소극적으로도 비춰질 수 있었지만, 평상시 그녀의 겸손하고 성실한 태도가 독일 국민에게 신뢰를 주었기 때문에 호감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가장 선호하는 정치인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메르켈은 앞에 나서지 않고 소박하게 행동했고 문제에 집중하고 매우 현실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의도를 쉽게 드러내지 않았고, 섣불리 자신의 생각을 공표하거나 모든 일에 앞정서는 일도 없었습니다. 슈뢰더와는 확연히 다르게 말을 아끼고 장관들에게 현장을 맡겼습니다. "메르켈은 겸손을 선호한다"고 신중하기로 유명한 영국 언론사의 특파원 앨런 포스터의 평가처럼 그녀의 겸손하고 과장되지 않은 태도는 강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비언어적 메세지를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세 가지 사례를 들었는데요. 비단 정치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강의, 스피치, 일상 생활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메세지를 전달할 때 주의할 점은 '말의 내용' 보다 비언어적인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 있는 태도와 확신에 찬 음성, 청자에게 편안하고 여유로운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충분한 연습과 노력을 기울여야겠습니다.
※ 참고문헌
<표정의 심리학>, 디르크 아일러트
해리스, '마이크 음소거' 규칙에 표정 적극 활용…트럼프 발언에 '절레' (뉴스1 2024-9-11)
[영상] “얼굴이 다했다”…美대선 토론서 주목된 해리스 표정들 (헤럴드경제 2024- 9-14)
美사상 첫 대선 TV토론…‘정치신인’ 케네디 vs ‘부통령’닉슨[역사 속의 This week] (문화일보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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