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 유통업계는 ‘푸드웨이스트(Food Waste)’를 새로운 혁신의 바로미터로 삼고 있습니다.
버려지는 식품을 줄이는 일은 단순한 ESG 활동을 넘어 운영 효율성과 브랜드 신뢰를 동시에 높이는 전략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의 유통기업 알버트하인(Albert Heijn)은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며 지속가능한 리테일 모델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푸드웨이스트, 왜 지금 중요한가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유통기한이 남은 식품 폐기물을 버리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슈퍼마켓이나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유통기한을 확인합니다. 사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구매해도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의 민감한 반응 때문에 유통기한이 여유로운 제품을 앞에, 유통기한이 짧은 제품을 뒤쪽에 진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사이 멀쩡한 식품들이 소비자의 손에 닿기 전에 그대로 폐기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품 생산량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3억 톤이 매년 버려집니다. 1인당 연간 165kg의 식품을 버리는 셈입니다. 이는 경제적 손실을 넘어, 생산·포장·운송·보관·조리 과정에 사용된 막대한 에너지와 자원이 함께 낭비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식품 폐기 문제를 단순히 “환경 캠페인” 차원이 아닌 비즈니스 모델과 운영 구조의 혁신 과제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글로벌 리테일이 선택한 식품 폐기 솔루션 트렌드
- AI 기반 재고 예측
판매 이력, 요일·시간대, 날씨, 입지, 프로모션 데이터를 활용해 폐기량을 최소화하는 주문·재고 시스템 구축 - 유통기한 연동 다이나믹 프라이싱
유통기한이 가까워질수록 할인율을 자동 조정하는 AI 알고리즘 기반 가격 정책 - 소비자 참여형 구조 설계
전자 가격표(ESL), 앱 알림, 임박 할인 코너 등으로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폐기 예방 활동에 참여하도록 유도 - 재고 재활용·재가공 비즈니스 모델
남은 식재료를 활용한 레스토랑·푸드트럭·업사이클링 제품 등 새로운 수익원 창출
이 트렌드를 가장 선도적으로 구현한 기업이 바로 네덜란드의 슈퍼마켓 체인 알버트하인(Albert Heijn)입니다.
네덜란드 알버트하인, 지속가능한 슈퍼를 실험하다
알버트하인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슈퍼마켓 체인으로, 유기농 판매 확대, 플라스틱 감소, 식품 폐기물 최소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해온 기업입니다. 단순히 ‘친환경 캠페인’을 진행하는 수준을 넘어, 매장과 물류, 가격과 재고 구조 자체를 ESG 관점에서 재설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1) 매장 속 식물 공장: 신선 경험과 폐기 절감의 연결
알버트하인의 ‘식물 공장’은 거창한 설비라기보다, 매장 내부에 허브 가든을 꾸며둔 형태에 가깝습니다. 슈퍼마켓에 들른 고객이 직접 허브를 잘라 바구니에 담는 경험을 제공하는데, 마치 밭에서 채소를 수확하는 기분을 주면서도 신선한 제품을 구매한다는 만족감을 동시에 높여 줍니다.
매장 안에서 바로 재배·수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운송 과정이 줄어들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을 들여올 필요도 없습니다. 신선 소비를 촉진하면서도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춰 불필요한 폐기와 포장재 사용을 줄이는 구조적 장치인 셈입니다.
2)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새로운 포장 방식
네덜란드 슈퍼마켓에서는 일반 제품과 유기농 제품이 비슷한 비율로, 그리고 큰 가격 차이 없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알버트하인은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지 않고, 잘 깨지지 않는 쿠키로 만든 식용 용기 안에 과일이나 치즈를 담아 판매하는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독창적인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AI로 ‘떨이’를 재정의하다: 다이나믹 프라이싱
알버트하인은 유통기한이 짧아질수록 가격을 탄력적으로 떨어뜨리는 다이나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을 도입해 식품 폐기물 감소에 속도를 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떨이 판매’를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정교하게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2019년 도입된 AI 가격 시스템은 유통기한뿐 아니라 기후, 매장 입지, 재고량, 과거 판매 패턴 등을 분석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 가격을 자동 조정합니다. 전자 가격표(ESL)를 진열대에 부착해 정상 가격과 할인 가격을 동시에 표시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격이 자동으로 조정되도록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감(感)에 의존해 일괄적으로 ‘반값 세일’을 하던 방식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재고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폐기량은 줄고 매출 손실도 최소화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떨이”를 데이터 기반 재고 전략으로 전환한 혁신입니다.
사내벤처 ‘인스톡(INSTOCK)’, 유통기한 임박 식품을 구조하다
알버트하인의 사내벤처 인스톡(INSTOCK)은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을 활용해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에서 시작했습니다. 알버트하인에 입사한 직원 3명은 폐기 처분해야 하는 식품 재고의 규모를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고, 사내 벤처 공모를 통해 “This food has just been rescued”라는 컨셉의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약 5개월간 팝업스토어 형태로 운영한 결과 소비자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인스톡은 이후 독립해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레스토랑뿐 아니라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남는 식재료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훈제·발효 등 저장 방법을 소개하는 책도 출간하며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인스톡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식자재는 ‘유통기간이 촉박한 제품’뿐 아니라 ‘재고가 너무 많은 제품’, ‘운송 중 외관이 손상되었지만 먹는 데 지장이 없는 상품’까지 포함합니다. 창업 멤버들은 한 달에 약 20톤의 식품을 구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2021년 9월 기준 인스톡이 구조한 음식물은 총 1,080톤에 이릅니다. 이는 쌀로 환산했을 때 약 6,000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에 해당합니다.
알버트하인과 인스톡의 협력 구조는 매우 촘촘합니다. 다이나믹 프라이싱을 통해 유통기한 임박 식품을 최대한 매장에서 판매하고, 그래도 남는 물량은 인스톡으로 보내 레스토랑·푸드트럭에서 활용합니다. 그마저도 다 사용되지 못한 음식물은 동물사료나 바이오 연료로 재활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폐기되는 식품의 양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한국 시장의 변화: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국내에서도 2023년부터 영업자 중심의 ‘유통기한’ 표시에서 소비자 중심의 ‘소비기한’ 표시로 제도가 변경되었습니다. 기존 유통기한 표시제에서는 이 기한을 넘긴 식품은 부패·변질 여부와 상관없이 판매할 수 없었지만, 소비기한 표시제는 소비자가 식품을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최종 시점을 표시하는 제도입니다.
유통기한은 식품의 품질 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보수적으로 설정되어 있어, 실제로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품이 폐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적정 온도에서 보관한 달걀의 유통기한이 45일이라면, 소비기한은 약 70일 정도로 더 길게 설정됩니다. 소비기한 제도가 제대로 정착된다면 국내에서도 식품 폐기량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① ESG는 ‘스토리’가 아니라 ‘운영 혁신’이다.
환경·지속가능성은 이제 캠페인 메시지를 넘어, 포장·진열·재고·가격 구조 등 기업의 운영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해야 의미가 생기는 영역입니다. 알버트하인은 폐기 절감을 위해 AI, 가격표, 사내벤처, 재활용 체계를 하나의 구조로 엮어냈습니다.
앱 알림, 임박 할인, 재고 구조 프로그램 등 소비자가 변화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구조’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호감을 높입니다. 오늘날 ESG 커뮤니케이션은 일방적 메시지에서 참여형·경험형 구조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폐기를 줄이면 비용이 절감되고, 소비자는 그것을 윤리적이고 성숙한 브랜드 행동으로 받아들입니다. 환경성과 경제성이 동시에 충족되는 드문 영역이기 때문에 유통업계가 가장 적극적으로 혁신하는 분야입니다.
푸드웨이스트 문제는 환경을 넘어 브랜드 철학, 고객 경험, 운영 혁신, 비즈니스 모델을 연결하는 핵심 전략입니다. 알버트하인의 사례는 “지속가능성은 캠페인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리테일 혁신입니다.
📚 참고문헌
- 신현암·전성률, 『왜 파타고니아는 맥주를 팔까』
- 머니S, “2023년 1월 1일, 유통기한→소비기한 달라지는 점은?” (2022.11.23)
- 농수축산신문, “2023년부터 축산식품 ‘소비시한’ 표시제 시행” (20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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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22년 11월에 작성된 콘텐츠를 2025년 기준 최신 트렌드와 사례 중심으로 리빌딩·업데이트한 버전입니다.
본 콘텐츠는 더피알컨설팅의 브랜딩·PR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PR매쉬업(PR MASHUP)에서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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